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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마마’치료법이 적힌 '보적신방' 발굴
한국국학진흥원, '마마’치료법이 적힌 '보적신방' 발굴
  • tk게릴라뉴스
  • 승인 2019.11.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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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금포고택에서 발견된 희귀한 의료서적
보적신방 권2 - 마마증상. 한국국학진흥원
보적신방 권2 - 마마증상. 한국국학진흥원

[tk게릴라뉴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10월 30일(수) 안동 금포고택으로부터 543점의 귀중한 한국학 자료를 기탁 받았다. 다량의 의료 전문 서적이 포함된 이들 기탁 자료 중에는 『보적신방(保赤神方)』이란 매우 낯선 이름의 책자가 들어 있다. 유년기에 걸리는 마마에 관한 전문 의료서적으로, 마마에 대한 원인과 예방법, 그리고 해독법 등이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다. 천연두, 두창 등으로 불리는 마마는 발열, 수포, 농포가 수반되는 급성 질환으로 조선시대에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악성 전염병이다. 마마가 창궐한 뒤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기 때문에 절대적인 외경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서명의 ‘보적(保赤)’은 『서경』의 ‘갓난아이를 보호하듯’이란 구절을 인용하여 제목으로 삼았다. 자기자식을 키울 때 정성을 다하듯 의술을 베풀 때에도 마음을 다 기울여야 한다는 존애(存愛)의 의미가 담겨 있다. ‘신방(神方)’은 ‘신비한 처방’, 또는 ‘신기한 방법’이란 뜻으로 의료 서적의 제목에 자주 사용된다. 책의 크기는 가로 7cm×세로 19cm 이며 60쪽 분량의 전후 양면에 붓으로 단정하게 필사되어 있다. 체재는 서문, 권1, 권2, 필사 기록 순으로 구성되었고, 장정 형태는 한지를 이어 붙여 똑같은 크기로 접고 좌우면에 표지를 붙인 이른바 절첩장의 형식이다. 이러한 제책 방식은 고려시대 사경에서 흔히 보이며, 특히 조선시대 수진본의 사본 제작에도 많이 이용되었다.

‘마마’ 치료는 갓난 아이 돌보듯 하라!

『보적신방』의 첫머리에는 1806년에 퇴계학파의 관료학자 권방(1740~1808)이 지은 서문이 붙어 있다. 이 서문은 그의 『학림문집』에는 실려 있지 않기에 자료적 가치가 더욱 높다. 권방은 서문에서 ‘갓난아이를 돌보듯 하면 병은 자연히 치료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 마마에 관한 치료도 의원의 성심성력에 달려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마마의 치료에서 열병과 종창의 두 분야에 모두 유의해야 함을 지적하고, 마마의 치료에서 오장 가운데 비장의 기능을 든든하게 하고 생기를 충족한다면 고치지 못할 걱정이 없다고 제시하였다. 특히 권방은 옛날의 치료법에 구애될 필요가 없음을 제시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타고난 기운이 시대에 따라 허실이 다르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체질과 생리에 맞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처방해야 좋은 효험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권방은 “이 책의 처방대로 따르면 마마가 완쾌가 될 것”임을 명시하여 이 책의 가치를 분명히 밝혔다.

책의 저자와 내용 – 몸이 조화를 이루면 병이 절로 물러난다

『보적신방』의 저자는 변광원으로 본관은 밀양, 자는 여정, 호는 요산이다. 출신지는 밀양 변씨의 세거지가 있는 밀양이나 청도로 추정된다. 대대로 의업을 가업으로 하는 세의(世醫)로, 당시의 신분제로 보면 중인층에 속한다. 아버지 변중관은 전의감정을 지냈으며 변광원 자신도 전의감 직장을 지냈다. 역과방목에 이름이 올라 있는 변광전과 변광운은 그의 동생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변광운의 역과방목에 변광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1816년 이전에 작고한 것으로 짐작된다. 가학을 계승한 변광원은 한의학 이론에 정통하여 자신의 호를 딴 『요산신방(樂山神方)』을 지어 만병을 치료하는 바탕으로 삼았다. 또한 마마 치료에 관한 중국 및 조선 학자의 제설을 집성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보적신방』을 편찬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당대에 이미 일가를 이룬 명의로서, 의원이 지녀야 할 최고 덕목인 존애(存愛)의 정신에 기초하여 마마의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마마에 걸리더라도 부족한 정기를 보충하고 질병의 기운을 감소하면 몸이 조화를 이루어 병이 스스로 물러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병의 예방을 중시하는 한편 증상에 따라 적합한 여러 가지 치료법을 마련했는데 환자의 형색을 직접 살피고 전래의 의서를 참조하여 조제하고 투약한 사례가 적용된 경우이다.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권1은 두진의 근원, 예방법, 증세, 전염, 약물 치료, 멸반 등에 대해 서술하면서 방제의 여러 효능, 약물이 작용하는 원리, 구성 약물의 성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의학 이론과 진단 및 치료 경험에 입각하여 마마에 대한 임상적 견해가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리되었다. 또한 발병 전의 예방을 중시하면서 마마의 색깔, 금기사항, 식이요법, 약물 복용시에 준수할 사항도 제시하였다. 권2는 마마의 여러 가지 증세에 대해 합리적으로 다양하게 논술했다. 발열, 발진, 수포, 해수, 중풍, 불면증, 구토, 설사, 변비, 딱지 등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약방, 음식 등 치료에 대해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제시했다. 두창이 나은 뒤에도 남아 있는 독의 증상에 관해서는 약재를 다룬 탕액 등의 치료방법을 증상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홍역이라 불리는 마진에 대해 근원과 형상, 증세, 치료법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속담에 “마마가 앞에 오고, 홍역은 뒤에 온다.”고 했는데 두창은 큰 마마, 홍역은 작은 마마라고 하였다. 책의 뒷부분에는 안기역 관아에서 1806년 음력 12월에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음력 1월에 끝마쳤다는 사기(寫記)가 기록되어 있다.

책의 가치와 의미 – ‘활인’과 ‘존애’ 정신의 발현

『보적신방』의 가치는 첫째, 마마의 치료에 대한 이론적 연구 및 일상에 직접 활용된 처방이 조화를 이루며 합리적으로 제시된 점이다. 즉 마마의 예방법 및 치료, 그리고 마마를 앓고 난 뒤 주의할 사항이 보완적 관계를 이루며 설명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생명을 중시하는 ‘활인(活人)’의 정신과 사물을 구제하려는 ‘존애(存愛)’의 인식이 책의 곳곳에 묻어난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책의 제목에서도 이러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조선시대에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환자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의 측은한 마음이 성심을 다해 의술을 베풀겠다는 다짐으로 표현되었다. 셋째는, 책 서두에 실린 권방의 서문 자체가 한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권방은 당시 퇴계학파의 중진학자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자연을 사랑하며 학문과 덕행 수양에 전념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서문에서 마마의 치료 역사를 명료하게 정리해 두었는데, 그도 유학자로서 상당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요컨대 마마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민초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변광원은 ‘활인’과 ‘존애’의 정신으로 마마 치료법을 『보적신방』에 담았다. 그는 병이 들기 전에 미리 예방할 것을 강조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치료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의 예방 중심의 의학 정신은 그가 체질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중시한 데서 찾아진다. 책자의 처방 가운데는 그의 독자적인 견해가 담긴 경험적 비방이 다소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설명은 비교적 구급방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마진에 절실하게 필요한 치료 처방이 상세하게 열거되어 의학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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